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취급이 간단하고 보관 자체도 쉬워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물건을 사기 전 유통기한을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쉽게 상하거나 공식적인 유통기한이 빨리 끝나는 식품은 비상식량으로서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대다수는 비상식량으로 라면을 떠올리지만 라면은 3~5개월밖에 보관할 수 없습니다. 유통기한이 한두 달 넘어가면 산패가 일어나고 끓여도 누린내가 납니다. 라면을 좋아해서 오래 보관하면서 먹고 싶은 사람은 가정용 진공포장기로 한 번 더 포장 해둘 것을 권합니다. 기한을 조금 늘릴 수 있지만 '기름에 튀긴 면'이라는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햇반은 어떨까' 햇반의 유통기한은 6~12개월 정도입니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밥이라는 점에서 라면보다 유리하고, 유통기한을 1년쯤 넘겨도 먹는데 이상 없습니다. 그 밖에 3분 즉석 요리류는 1~2년, 햄 종류의 통조림은 3~5년, 참치 통조림은 5~7년 정도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품목이라도 양념이 강하거나 첨가 식자재가 많은 것들은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마트에 가면 종종 할인 행사를 통해 싸게 파는 것들이 있는데 무조건 구매하지 말고 유통기한을 꼭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비상식량을 준비할 때는 용기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유리병은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는 저장 식품 용기로 제격이지만 무겁고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병 자체가 무거워 떨어뜨리기 쉽고 진열할 때 옆의 병과 부딪혀 깨지기도 쉽습니다. 더구나 비상시 이동 중이라면 무게와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이 큰 문제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집에서만 보관할 거라면 유리병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심지어 땅에 파묻어둬도 됩니다.
비상시 조리가 간편하고, 먹기도 쉬어야 합니다.
시리아 내전이나 6월 25일 전쟁 때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는 곳이 전쟁터가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갑자기 피난을 가야 하는 상황인데 가다 말고 길거리 한쪽에서 그릇과 쌀을 꺼내 불을 피워 밥해 먹을 겨를이 있을까요? 연료와 버너는 얼마나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요? 밥이 미처 되기도 전에 연기를 본 주위 사람들이 좀비처럼 달려들지나 않을까요?
피난은 캠핑이 아닙니다. 일단 집에서 나오면 이동 중 한가하게 밥을 지어 먹을 상황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불을 피운다면 그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알리는 자살 행위입니다. 요리하느라 대피 시간을 소모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비상식량은 불을 피우지 않거나 혹은 아주 최소로만 사용하여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신속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참치 통조림이나 3분 요리류는 굳이 데우지 않아도 바로 먹을 수 있습니다. 즉석 수프나 전지분유도 물에 넣게 살짝만 끓이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집에서 일상적으로 해 먹던 밥과 찌개는 시간과 노력, 연료가 상당히 많이 드는 음식입니다.
평소에 먹던 것인가, 입맛에 맞는가?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난감해할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살아남은 재난 생존자들에게는 음식을 제공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생존자들에게는 흔히 극심한 스트레스가 뒤따르는데,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혹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증상입니다. 이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곧 신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낯선 음식물이나 특이한 식자재를 사용한 음식을 제공하면 바로 거부하거나 입맛을 잃는 반응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소화장애, 변비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증상은 여자, 노인, 아이들, 환자에게서 더 쉽게 나타납니다.
구입이 쉽고 저렴하며 유지하기 쉬운가?
비상식량은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양이 적당하고, 충분한 영양가와 열량을 제공하며, 평소에도 먹고 즐길 수 있는 일반적인 음식으로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은신처에서의 장기식인가 이동 시의 단기 행동식인가에 따라서, 즉 용도에 따라 구매 비율을 달리해야 합니다. 한 가지 용도로 한 가지 종류만 모아 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또한 해외 비상식 중 25년 보관이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것도 있지만 최적의 온도와 환경 조건을 갖춘 실험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가격 대비 역활을 충분하게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번 달 받은 급여 가운데 10만 원을 비상식량 구입에 쓰기로 했다면 고가의 외제 수입식품을 조금 장만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집 근처 대형마트로 가서 다양한 품목들을 구입하십시오. 같은 가격으로 트렁크 안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세련된 포장과 수년, 수십 년을 보장한다는 현혹적인 문구에 유혹당하지 마십시오. 비상식량은 충분한 양을 다양한 종류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야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진짜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다양하게 준비했는가
재난 대비자 가운데는 동결 건조 식량이나 참치, 라면, 햇반 같은 한두 가지 품목들만 왕창 준비한 뒤 "준비 완료"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제대로 준비한 것일까요? 우리는 평상시에 밥과 국이나 찌개 외에 다양한 반찬을 먹으며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찾아 외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간식으로 초콜릿과 빵, 과자도 먹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다양한 음식을 원합니다. 한두 가지만 먹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육류 통조림이라 해도 서너번 이상 먹으면 질리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여러 히스테리 증상이 나타나며 짜증 나고 심한 경우에는 식사 자체를 거부하거나 토하게 되고 의욕 상실과 자포자기 현상, 즉 '무력화'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를 "토끼 기근 현상(단백질 중독증)"이라고 부릅니다.
재난 시라도 평상시처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배고픔을 가시게 하고 열량과 영양을 공급하는 먹을거리 외에 평소 즐겨 먹던 땅, 과자 술이나 커피, 차 같은 기호식품도 준비하십시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사탕, 초콜릿, 과자 등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호떡믹스', '머핀믹스'처럼 간단히 가루에 물만 부어 오븐에 넣거나 프라이팬에 익히는 식료품을 준비해도 좋습니다. 비상시 지치고 힘이 들 때 달콤한 빵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나 어른이나 매우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녹차 티백도 넉넉히 준비하십시오. 가격도 저렴하고 유통기한 이후에도 먹을 수 있어서 유용합니다. 다만 커피믹스는 쉽게 상하므로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외에 알아야 할 중요 사항
개봉하거나 먹는 데 힘든 식품 혹은 조리에 특별한 공구가 필요한 식품은 비상식량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통조림도 되도록 바로 딸 수 있는 원터치 캔 방식이 좋습니다. 혹시 대용량 통조림처럼 원터치가 아닌 제품을 구매했을 경우에는 테이프를 사용하여 윗면에 캔 따개를 붙여두십시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상식량의 정확한 용도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사용할 비상식량인지, 단기 행동식인지, 혹은 임시로 사용할 비상식량인지 확실하게 구분하십시오.
용도와 사용 목적에 따라 식품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십시오. 또 통조림과 동결건조 음식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여 다양한 비상식량을 준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