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pper와 Survivalism
'재난 대비자'라고 불리는 Prepper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많은 이들이 재난이나 사고를 대비하여 평소 집안의 여러 곳(지하실 식품 저장 창고나 대피처를 만들어 비상식량과 생존 물품을 저장합니다. 미국은 홍수와 폭설, 강풍과 토네이도, 태풍과 물난리 같은 기상이변으로 인해 자연재해가 잦은 나라입니다. 테러의 위협도 빈번합니다. 게다가 국토가 크고 사람이 없는 오지도 많습니다. 모험을 좋아하는 국민 특성상 사고의 위험도 아주 크지요. 이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각종 재난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습니다. 평소에도 재난 대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실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국가적인 재난 대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르몬교처럼 교리 차원에서 재난 대비를 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평범한 일반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재난 대비 비상용품을 준비하도록 학부모에게 요청한다고 하니 놀랄 만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책가방 외에 재난 대비 용품이 든 작은 가방을 휴대하거나 학교 사물함에 각자 보관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에서는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재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메뉴얼화한 알기 쉽고 해당 언어로 번역하여 서비스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형식적인 재난대처 매뉴얼로만 존재하거나 그것마저 무시한다. 정말 대비됩니다.
미국인 가운데는 좀 더 전문적으로 적극성을 띠고 재난 대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창고 가득 쌀과 물을 비롯한 다양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구입이 용이한 덕분에 권총과 자동소총, 엽총 등 다양한 호신용 총기와 탄약도 모아 놓습니다. 평소에는 여러 재난 환경에서의 생존법을 연구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하거나 자기 경험을 블로그와 유튜브에 올리고 메뉴얼화합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동호회나 로터리클럽처럼 이들도 지역 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생존 물품을 값싸게 공동구매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 벙커 같은 대피처를 만들고 살아가는 적극파도 많습니다.
전기와 가스 등 외부 에너지의 보급 없이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집을 설계해 짓고, 태양열과 태양광을 이용해 난방과 전기를 해결합니다. 그뿐일까요? 밭에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크게 손이 가지 않는 가축들을 키우면서 식량 자급까지 꿈꿉니다. 대재난이나 전염병, 전쟁이 벌어져 사회가 혼란스러워져도 이들은 스스로 만든 안전한 집을 대피처 삼아 재난이 지나가고 다시 평온한 일상이 올 때까지 잠시 버틸 수 있는 안식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덕분에 이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문잡지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꼭 Prepper가 아니더라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약간씩은 재난 대비를 하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Prepper와 Survivalism처럼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키자"라는 모토는 우리에게 낯선 개념입니다. 6월 25일 전쟁 이후 60년간 우리나라에 별다른 전쟁이나 큰 재난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국가와 개인이 모든 힘과 역량을 일하고 돈 버는 데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안전 대신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대형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결국 2014년 세월호 참사라는 인재를 맞게 되었습니다.
"여러 재난과 전쟁, 대형사고, 위기 상황에 미리 대처해 살아남고 나와 가족을 지키자"라는 생각이 바로 생존주의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생존주의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구조대, 그리고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지시를 따라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경험한 탓입니다.
생존주의자를 미국에서는 Prepper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코난'이라고 합니다. 80년대 인기 애니메이션이었던 의 주인공처럼 대재난에서도 생존하고 어울려 살아남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코난은 위기 상황에서의 생존 여부를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모험가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평소 미리미리 식구들이 비상시 먹을 식량과 물, 그리고 각종 비상장비 등을 준비합니다. 집과 자동차를 대피소와 전진기지로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집에서 버티며 생존하는 법과 반대의 상황이 닥쳤을 때 집을 버리고 탈출하는 법을 배웁니다. 특정한 종교적 믿음과 상관이 없으며, 특히 세상이 뒤집히거나 끝날 거라고 믿는 종말론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가 매년 보험을 드는 것처럼 이들도 조금씩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여러 생존 기술을 익혀두면 비상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코난이 믿는 것은 자기 자신과 희망입니다. 언젠가 혹은 조만간 세상에 일시적으로 어떤 재난이나 큰 사고, 전쟁, 재앙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시기가 올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로 도시 문명이 끝나거나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혼란에 빠지면 식량과 물, 에너지를 구하기 힘들고 법과 공권력이 잠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잠시 폭력적인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간의 혼란만 잘 견디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종말론자나 음모론자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코난은 매일 일터에 출근하고 아침이면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사람들, 즉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시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전국적 대정전 같은 대재난과 사고가 갑자기 닥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나와 가족이 그런 사고와 재난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다면 어떤 방법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연구합니다. 이런 문제를 개인이 고민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러한 국가적이 대재난이나 사고가 우리가 사는 곳에서 발생할 경우 정부나 소방방재청 같은 기관의 도움을 완벽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결코 안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대형 안전사고 외에도 전쟁의 위기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북한과 휴전상태입니다. 2010년에는 연평도 포격처럼 국지전적인 상황이 벌지기도 했습니다. 북한을 비롯한 정체 모를 곳에서 인터넷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보고 인터넷으로 하는 모든 업무가 마비된 적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원전 사고가 속출하고 있으며,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블랙아웃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수해나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나 전염병으로 고립되어 집에 갇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식구들은 집 주변에 차오르는 물이나 강력한 태풍에 집이 붕괴하지 않을지 공포에 떨면서 가장인 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에는 가스와 수도가 끊기고 먹을 거라곤 거의 없습니다. 언제 올지 모를 정부의 구조대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탈출한 것인가? 우리 집에 구조대가 제일 먼저 올 것 같은가요? 연평도 포격 당시 섬을 떠나 긴급 피난 온 이주민들이 찜질방에서 한 달 이상 머물렀던 일을 떠올려 봅시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와 재난안전대책본부, 해경, 선장 같은 관련 전문가들이 보여준 무능력함과 무책임한 행태를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게 바로 당신이 '코난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