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금요일이 온다면?
주말 저녁 늦은 시각, 밤이 깊어 춢출해질 때쯤 우리는 곧잘 팸플릿을 뒤져 야식집에 주문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배달돼 온 야식을 가족과 함께 먹으면서 TV로 이나 같은 오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시청합니다. 물론 요즘에는 더 다양한 오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글 속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일과는 대개 비슷합니다. 십중팔구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닙니다. 모기에 뜯기면서 풀숲을 헤치고 나무 위에 올라가 야자수 열매를 따거나 커다란 창을 만들어 멧돼지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 애씁니다.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재미를 느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연자는 사냥에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그 결과 썩은 나무둥치 안에서 꿈틀거리는 하얀 애벌레를 집어 들고 '이걸 먹여야 하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오만가지 인상을 쓰면서도 기어이 애벌레를 입에 넣고 마는 출연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작은 충격과 낯섦을 느낍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손가락만 한 애벌레를 날로 먹나니! 어떤 이에게는 기절할 만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통닭과 맥주를 먹고 있는 당신도 다음 달 어느 금요일에는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시내를 헤매거나 벌레를 잡아먹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머나먼 정글 속에서가 아니라 당신이 살고 있는 집과 이 도시에서, 또 당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그럴 필요 없다고, 집에 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확인해 보십시오. 만약 내일부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현재의 비축분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해 보십시오.
영화나 TV 뉴스로만 보던 극한의 대재난이 아니라 블랙아웃 즉 전기가 끊기는 대정전만 일어나도 세상은 아우성이 되며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신호등 꺼진 거리에는 수많은 차가 꼼짝 못 하고 서 있고,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빌딩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갇힐 것입니다. 휴대전화 기지국은 잠깐이야 비상 배터리로 작동하겠지만 곧 통화량 폭주로 한계에 다다를 것이고 통신망도 이내 다운될 것입니다.
도로가 막히고 통신망마저 끊긴 상황에서 일부 지역이 아닌 광대한 지역에서 빗발치는 구조 요청은 경찰과 소방대의 처리 능력을 초과하므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리둥절한 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일단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인근 편의점이나 중소형 마트로 달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정전으로 카드 계산이 안 되어 당황할 것입니다. 계산원에게 "제발 물건 좀 팔라"고 사정하는 사이 현금을 들고 온 다른 사람들이 마트 선반을 싹쓸이할 것입니다.
당신을 포함해 회사와 일터를 빠져나온 일군의 사람들은 멈춰 선 버스와 전철을 뒤로하고 집에 가기 위해 걷기 시작할 것입니다. 몇 시간이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행군입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새로운 차원의 공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곳은 며칠 만에 정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그곳에서 진짜 생존에 대한 고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준비된 자VS, 준비하지 못한 자
대정전 외에도 전쟁, 폭동, 지진, 화산폭발, 태풍, 전염병 확산 등 각종 자연재해 또한 언제든 이와 비슷한 상황을 현실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전기에 의존하는 인류 문명을 의외로 깨지기 쉽습니다. 한쪽이 쓰러지면 그 여파는 도미노처럼 다른 곳까지 순식간에 전파될 것입니다. 각종 자연재해를 수시로 경험하며 평소 대비에 철저한 미국이나 일본보다 재난 대비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한국은 특히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받는 충격도 훨씬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의 재난과 사고 등 비상사태를 대비해 충분한 비상식량을 준비해 놓았다면 당신과 가족은 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서 무슨 일이 터지든 조용히 안전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사태가 잠잠해지거나 해결될 때까지. 그동안 당신이 집에서 할 일이라곤 남은 식량을 확인하고 최대한 오래 먹을 수 있도록 아끼고 관리하며, 때때로 고층아파트 베란다에서 난장판이 된 시내를 바라보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지루해지면 책을 읽거나 가족과 장기를 두기도 하고, 보드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소 재난 대비를 생각하지 못해서 비상식량을 사나흘 분조차 비축하지 못한 가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재난 초기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낯선 정글에 뛰어들어야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때 당신 곁에는 TV 카메라와 지원 스텝, 현지 가이드, 의료진 대신 혼란과 각종 위험만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연습과 준비 없이 위험 가득한 낯선 정글에 홀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기어이 살아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식량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농지가 매년 큰 폭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물과 창고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고령인 농사 인력마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식량 생산에 관계된 중요 요인들이 붕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말입니다.
4면이 막혀 있어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한국은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은 물론 먹을거리까지 수입에 의존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전략은 "모자라면 수입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을 해외 수입에 대부분 의존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내부적 요인 외에 전 세계 곡창지대에 가뭄이 들어 해외 곡물 생산량마저 감소한다면 곡물의 수입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아랍의 민주화 시위 역시 곡물가 폭등이 야기한 배고픔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주로 배를 이용해 수입하는 한국은 그 생명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끝에 위치한 한국은 해상 수송선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심각한 사태가 벌어져 바닷길이 봉쇄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중국과 일본, 동남아 국가의 동,남중국해를 둘러싼 극심한 긴장은 쉽게 해결되기 힘들 것이며 언제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만일 두 나라 사이에 국지전이 벌어진다면 그 주변 해역은 봉쇄될 게 뻔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식량 수송선은 멀리 돌아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수송비와 해상 보험료가 급등할 테고, 운항을 포기하는 해운사도 나올 것이며, 식량 가격은 하루마다 폭등할 것입니다. 주부들은 마트의 식료품 가격이 매일 매일 바뀌는 것을 보고 경악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부드러운 재난 체험에 속합니다. 이후 사태가 빨리 해결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진짜 재난 1단계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렇듯 비상식량 준비는 재난 대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을 사야 하는지 또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