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루 중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이 아닌 일터(직장, 사업소, 가게, 학교)입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도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일터에서 재난을 만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일터에서 재난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도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일터용 생존 가방 준비하기
일터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재난 대비 역시 생존 가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다룬 것처럼 배낭에 장기 보존이 가능한 식품과 물, 약간의 장비 등을 준비해서 두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따로 72시간 등의 시간제한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직장에서 집까지 가는 귀환 상황을 대비해 추가로 신발과 편한 옷, 등산지팡이 등을 포함하면 됩니다. 다른 생존 가방과는 달리 일터용 생존 가방은 보관 면에서 여러모로 편리하고 유리합니다. 공간의 제한이 적고 내부 온도가 1년 내내 균일하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보관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일터용 생존 가방은 두 곳 이상의 장소에 복수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개인 사물함, 창고, 책상 밑, 휴게실 등 모두 가능합니다. 되도록 다른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놓아 둡니다. 하지만 기본 장소로는 본인의 책상 밑을 가장 추천합니다. 항상 보고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난이나 분실의 염려도 적고, 남의 구설에 휘말릴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유리한 점이라면 본인이 앉은 자리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존 가방 구성 품목
잘 쓰지 않는 적당한 배낭에 저렴한 먹을거리를 넣어둡시다. 그 외 방수 재킷, 양말, 수건, 두꺼운 옷, 플래시, 핫팩 등도 준비합니다. 공간의 여유가 있으니 따뜻한 스웨터나 모포, 운동복 등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72시간을 버티는 데 필요한 품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흡연자라면 담배 한두갑 정도가 필요한 것이고, 애주가라면 팩 소주를 한두 팩 넣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물은 필수품이다
인체에는 하루 최소 2L의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페트병으로 물을 2~3병 준비해 둡시다. 굳이 생수를 사놓기보다는 페트병을 깨끗이 세척한 다음 정수기 물을 넣어두면 됩니다.
발을 보호해 주는 편한 신발 준비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직장에서 탈출하여 보다 안전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이때 집에서 신고 나온 정장용 구두나 하이힐을 신고서는 오래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상시를 대비해 무과 식량 외에 몇 시간쯤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을 편한 운동화나 등산화, 밑창이 부드러운 조깅화, 등산화 등을 준비해 둘 것을 권합니다. 발이 노출되는 샌들이나 바닥이 딱딱한 캔버스화, 스니커즈류는 피하십시오.
등산용 지팡이를 활용하라
배낭을 메고 걸을 때 등산지팡이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스틱을 이용하면 그냥 걸을 때보다 20~30% 정도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등산지팡이를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파괴된 거리, 치안이 불안한 곳, 낯선 거리를 오랜 시간 걸어야 한다면 맨손보다는 그래도 뾰족하고 긴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뿐더러 위협을 가해오는 대상이 누구든 스틱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는 섣불리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협의 대상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굶주린 개나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등산용 지팡는 전문 등산용인 고가의 4단 초경량 제품보다 일반적인 3단 저가형이 더 좋습니다. 좀 무거운 것이 더 튼튼하고 타격할 때 더 위력적이라 무기로도 안성맞춤입니다. 또한 손잡이가 일자형인 것보다는 T자형이 좋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휘두를 때 힘을 더 많이 발휘할 수 있습니다. T자형은 일반적으로 저가형 제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등산용 지팡이는 펼친 상태이든 접힌 상태이든 실제 무기로도 꽤 쓸 만합니다. 특히 검도나 쌍절곤, 당파 등을 익힌 무술인이라면 더욱 무서운 무기로 돌변합니다. 평상시에는 위협적인 무기로 인식되지 않는 게 튼 장점입니다.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해서 거리를 다닐 때 막대기에 칼을 꽂은 사제 창을 갖고 다니면 안 됩니다. 주의를 집중시켜 경찰이나 폭도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이소에 가면 묵직한 3단 스틱을 5,000원에 살 수 있습니다. 몇 개쯤 준비해서 일터, 자동차 트렁크, 집 등에 호신용 무기로 넣어둡시다. 생존 무기로서 장점을 발휘할 것입니다.
일본 3월 11일 대지진 당시 도쿄는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통과 전기가 차단되었고, 도로는 멈춰 선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승용차와 대중교통을 포기하고 몇 시간이나 걸어서 힘들게 집에 가야 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보통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의 구두에 얇은 코트 차림이었을 텐데 3월 초의 눈 오는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면서 몇 시간을 걸어서 귀가한 것입니다. 그날 길거리의 편의점에는 순식간에 물건 전부가 바닥나고 조금 늦게 찾아온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채울 땅 하나 컵라면 하나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만일 그때 사람들이 일터용 생존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면 집까지 걸어서 돌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후 일본은 매년 정기적으로 시민들을 모아 재난 발생 시 집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큰 재난을 몸소 체험한 시민들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훈련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도쿄 도심 안의 민간 회사에서도 빌딩 지하실에 막대한 양의 비상식량과 물을 비축해 놓고 있습니다. 회사 직원은 물론 인근 시민들이 몰려와 대피해도 한참 동안은 지하대피소에서 버틸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입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나 강요 없이 회삿돈을 털어 스스로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도심의 큰 회사들이라면 이러한 도심형 재난 대비에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국민 각자가 스스로 대책을 세우고 준비하는 게 훨씬 현명할 터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