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량이 라면이라고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고 전면전 위협을 하며 개성공단을 폐쇄합니다. 불안감에 휩싸인 일부 사람들은 대형마트로 차를 끌고 가 트렁크 가득 생수와 라면, 부탄가스, 인스턴트 밥을 사 가지고 옵니다. TV 등 언론에서는 북한의 위협적인 도발에도 시민들을 별다른 동요가 없고, 대형마트에서의 사재기도 없다고 말하지만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몇 달 뒤에 단신으로 조그맣게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때 대형마트에서는 라면과 생수, 부탄가스의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도 그때 마트에 가서 라면과 생수를 좀 더 살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보통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라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상 라면은 비상식량이 아닙니다. 보존기간 1년 이하의 먹을거리는 비상식량으로서 오래 저장하고 체계적으로 관리와 보관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기름에 튀긴 라면은 기껏해야 얇은 비닐 한 장으로 포장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공식 유통기한은 5~6개월이고, 실제로 거기서 두 달만 더 지나도 냄새가 납니다. 또한 라면만 먹고서는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영양가도 부족하지만 2~3일만 먹어도 신물이 날 것입니다. 라면은 별식으로는 좋지만 적합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건조 국수가 낫습니다. 유통기한이 2~3년에 달하고 가격도 라면보다 쌉니다. 인스턴트 밥의 유통기한도 6개월에 불과합니다. 산소흡수제를 넣은 제품은 1년까지도 보관할 수 있지만 그 종류가 많지 않고, 일부는 날로 못 먹고 꼭 데워야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상식량이란 무엇일까요?
'비상식량'이란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비상시에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말합니다. '조리가 없다'는 말은 정식 요리 절차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과 불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기보다 아주 최소 한도(10분 이내 데우는 용도)로 쓰고 먹을 준비를 마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상식량은 단기간용과 장기간용, 야외에서의 이동용과 집에서 먹는 실내용으로 나뉩니다. 재난과 비상 상황을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이 두 부분에 대해서 모두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외에서 긴급히 대피하거나 이동 중인데 배고프고 식사 때가 되었다고 멈출 수 있을까요? 더구나 평소 집에서처럼 한가하게 솥과 버너를 꺼내 쌀을 씻어 안치고 찌개를 끓일 수 있을까요? 안전한 아지트나 대피처에 도착했다면 모르지만 황급히 이동 중일 때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준비가 많이 필요한 정식 요리법은 언감생심입니다. 10분 이내에 모든 준비가 가능한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테니까요. 필요하다면 하루 한 끼만 먹거나 이를 위해서 아침 혹은 저녁에 하루치를 모두 요리해서 나눠 먹을 수도 있습니다.
전지분유, 각종 통조림, 쇠고기 수프, 시리얼, 레토르트 즉석 요리 팩, 국수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다양한 비상식량을 준비합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같이 필수 영양소를 함유한 식품 외에 야외에서 추위를 견디고 장기간 이동 시에 필요한 고열량 식품까지 라면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은 많습니다. 위에 언급한 비상식량들은 끓는 물만 준비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비상식량 준비 요령
1단계로 가족의 1개월 먹을거리, 즉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한 집마다 1개월분의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것은 정부에서도 권장하는 사항입니다. 주변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한 것들로 처음엔 1개월분만 준비합시다. 다음 달에 또 1개월분을 추가하고, 그다음 달에 다시 1개월분은 추가합시다. 이런 식으로 계획과 일정을 세워 순차적으로 구입하면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직접 정리하고 준비하면서 관련 노하우도 여러 가지 익힐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몇 년 후, 그동안 준비해 둔 비상식량들의 유효기간이 한 번에 찾아와서 급히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하지만 1년 이상 분은 힘이 듭니다. 양이 어마어마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 아니면 공동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비상식량을 쌓아둘 공간이라고 해야 앞뒤 베란다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 터이니 잔뜩 쌓아둔 비상식량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혹은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걸림돌이 될 게 뻔합니다. 또한 방문하는 손님마다 쌓아놓은 박스를 보며 궁금해야 할 것입니다. 어떠면 당신은 궁색한 변명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이웃이 궁금해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위에 소문이 퍼지면 당신과 가족을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재난이 일어난 뒤에는 비웃던 그들이 먹을 걸 달라고 달려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 몇 번은 도와줄 수 있겠지만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더 달고 올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돌려보내기도, 식량을 나눠주기도 힘든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 당신이 얼마간의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어떤 재난이 닥쳐오든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집에서 가족과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당장 다음날부터 위험을 감수하고 먹을 것과 물을 찾으러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른들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